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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어느 나라든 건국설화 혹은 건국신화가 존재하는 것은 일반적인 사실이다. 우리나라 역시 단군에 대한 신화는 나라의 시조를 신격화하는데 일조를 가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일제가 고조선의 단군을 신화 혹은 설화로 고착시켜 단군이라는 명칭이 마치 신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기 위해, 미우라 히로유키의 「조선의 개국전설」을 비롯한 수십 편의 논문을 식민사관을 주창하는 학자들에게 저술하여 발표하도록 했던 이유는 시조에 대한 신격화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일제의 의도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단군을 신화 속의 인물로 만듦으로써 고조선의 역사를 말살하거나 혹은 최대한 삭감함으로써 대한제국의 역사를 시간적으로 축소하고자 한 것이다. 다음은 고조선을 일개 소국으로 만들어 그 영역을 반도 안에 국한시킴으로써 대한제국 영역의 공간적인 축소를 꾀한 것이다.
위의 두 가지 행위는 일제가 대한제국을 병탄하기 쉽게 만들고자 하는 작업의 시작이었다. 고조선이 그 역사도 짧고 영역 역시 보잘 것 없는 소국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함이었다. 고조선은 고대에 존재했던 소국에 불과함으로 역사나 영역을 논할 가치를 잃게 하려는 것이었다.
일제가 그렇게 하고자 한 가장 큰 이유는 고조선과 동·북부여 및 고구려의 역사를 단절시키고 그 영역마저 다르게 비정함으로써, 고조선과 고구려는 물론 동·북 부여와도 상호간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나라들인 것처럼 역사를 왜곡하여 그 맥을 자르자는 의도였다. 대한제국이 고조선의 맥을 이어 유구한 역사와 광활한 영토를 소유한 대 제국의 후손이었다는 정통성을 훼손하여 병탄작업을 손쉽게 하자는 목적이었다.
일제가 이렇게 천인공노할 역사왜곡 작업을 하게 된 것은 '삼국사기'에 고구려의 건국연대가 기원전 37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을 활용한 것일 수도 있다. 고조선이 기원전 108년 한나라의 침입에 의해 멸망하고, 고구려의 건국연대가 기원전 37년 이라면 동·북부여는 그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건국된 것으로 비정(比定)할 수 있으므로, 그것은 고조선과의 연계성을 부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더욱 고조선의 영역까지 한반도 안으로 축소한다면 만주를 근거지로 했던 동·북부여와 고구려의 역사는 고조선과 완전히 단절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 일제의 시도는 결국 한사군을 반도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나타난 현상 중 하나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중국으로 귀속된 만주국 영토다.
만주국은 만주 전역을 지배하던 나라로 제2차 세계대전 종전당시 연합군의 일방적인 판단에 의해 일본의 어용국가라는 명목으로 해체되고, 그 영토를 중국에 귀속시킨 나라다. 아무리 만주국이라는 나라가 일본제국주의의 어용국가 노릇을 했다고 하지만 그들은 엄연한 국가를 구성하고 있었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인 아이신 교로 푸이(愛新覺羅溥儀; 애신각라부의)를 황제로 세운 국가였다. 그리고 당시 일본의 어용국가 노릇을 한 것이 만주국만은 아니었다. 내몽골자치연합정부 역시 일제의 괴뢰정권 이었던 것은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합국이 만주국을 해체시킨 것은 누가 뭐래도 힘의 논리에 의한 부당한 행위이지만, 정당한 사유조차 규명하지 않고 그 영토를 중국에 귀속시킨 것은 더더욱 부당한 일이다.
그 당시 승전국인 연합국은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했었다. 러시아는 일본이 강점하던 사할린과 쿠릴 열도를 차지하기 위해서 뒤늦게 일본의 무장해제에 참여했으며, 미국은 오키나와에 해병대기지를 건설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오키나와를 지배하는 것은 물론 아시아 각 나라들과 오세아니아까지 자신들의 사정권에 두기 위해서 오키나와 지배를 시작했고, 영국은 지금처럼 글로벌한 세상이 오리라는 것은 아예 짐작도 못하던 시절이었으니 오로지 아시아 시장을 잃지 않기 위해 홍콩을 차지하려는 욕심으로 서로를 배려하는 것처럼 하던 때다. 즉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연합군 교서를 만들고 동북아시아의 영토를 난도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연합국들 사이에서 중국은 당연히 만주를 원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만주를 생활 근거지로 삼아 그곳에서 문화를 개척하고 꽃피우며 살아가는 우리민족의 선조들인 한민족(韓民族) 때문에 중국의 한족(漢族)들이 당한 고초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중국의 한족들은 만주 만큼은 한민족에게 내 주어서는 안 되고 자신들의 영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바람에 연합국 4개국의 욕심은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를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자신들의 욕심을 채워가고 있던 과정이었기 때문에, 중국이 만주를 원하자 만주가 중국에 귀속되어야 할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내 준 것이다.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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