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전회에 이야기한 국조왕과 태조대왕에 대한 부분에서 태조대왕이 일곱 살에 즉위하여 94년을 집권하였다는 것을 보면, 국조왕이 누구이며 언제 즉위를 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태조대왕이 아주 어렸을 때 국조왕은 즉위했고 태조왕과 국조왕의 치적과 재위연수까지 혼합하기 위해서 일곱 살에 즉위했고 94년을 집권했다고 적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조왕이 죽은 해는 중국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들과 비교해서 적은 것이므로, '후한서'에 기록된 안제 건광 원년(서기121년)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그 해에 태조대왕이 즉위를 해서 25년 동안 왕위에 있다가 차대왕에게 양위를 했다고 보아야 한다. 손영종은 삭감된 다섯 명의 왕 중에서 유류, 여률, 막래, 애루 등 네 명은 찾아냈다고 했는데, 나머지 하나가 태조대왕과 얽힌 국조왕이라는 것이다.
고대국가는 힘의 세력이 나타나면 그 주변 소국들이, 침략이나 병합 등의 방법으로, 제후국이 됨으로써 형성되는 연합국이었다. 따라서 초기의 왕권은 제후들의 입김에 의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고, 적어도 태조대왕 때까지는 힘 있는 제후국들에 의해서 왕권의 승계가 좌우됐다는 것을 얼마든지 엿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 있는 민중왕과 모본왕, 태조대왕의 즉위에 관한 기사를 요약해 보면, “모본왕은 그의 아버지 대무신왕이 죽었을 때 나이가 어려서 왕위에 오를 수 없었음으로 삼촌인 민중왕이 왕위에 올랐다가, 민중왕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모본왕은 사람됨이 어질지 못하고 포악하여 살해당했는데 그 재위연수가 불과 6년에 불과하다. 또한 그 아들인 태자는 못나고 어리석어 왕위를 이어받을 인물이 못 됨으로 태조대왕이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그것은 백성들의 환영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태조대왕은 태어나면서부터 눈을 떠서 볼 수 있었고 나이가 7세이면서도 남들보다 재능이 뛰어나 왕으로 삼았으며, 태후가 수렴청정을 했다”고 한다.
이것은 모본왕의 나이가 어려서 즉위하지 못했다는 것과 너무나도 이율배반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태조대왕의 아버지는 유리왕의 아들인 재사로 당시 계루부족의 대가들이 누릴 수 있던 고추가였으며 그 어머니는 해씨였다. 모본왕은 수렴청정 할 수 있는 어머니가 없었다는 것, 즉 자신의 지지기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비단 모본왕뿐만 아니라 민중왕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민중왕은 조카인 모본왕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으나 불과 4년 만에 죽고 왕위가 다시 모본왕에게 돌아간 점을 본다면 추정해 볼 수 있는 일이다. 아울러 살해당한 모본왕의 뒤를 이어 즉위했던 국조왕 역시, 기록이 없는 까닭에 어떤 절차로 즉위를 했고 왜 축출되었는지 밝힐 수는 없지만, 세력기반은 미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라의 기틀을 올바로 잡기 위해서 노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태조대왕은 제후들의 세력다툼에서 승리한 고추가인 재사의 아들로, 아버지의 세력을 등에 업고 고구려의 기틀을 제대로 만들 수 있었기에, 태조대왕이라는 묘호가 붙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태조대왕에게 축출된 국조왕은 제후들의 지지기반 없이, 나라의 기틀을 올바로 세우기 위해서 여러 가지 개혁을 추진했을 것이고, 그것이 왕위에서 축출당하는 덫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조왕을 죽게 하고 태조대왕을 즉위시킨 모종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추론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은, 궁의 죽음이 한나라가 고구려와 전쟁을 논할 정도로 중요한 시국 문제로 받아 들여졌다는 점이다. 이웃나라의 왕이 죽을 때마다 전쟁을 논하는 것은 아니므로, 궁의 죽음은 나라가 혼란한 상태에서 죽었기에 한나라가 전쟁을 논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삼국사기'의 기록에 추론을 덧붙여 설명하는 이유는, 태조대왕 자체의 재위연수나 기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 단순히 혼자 94년이라는 긴 세월을 왕위에 앉아 있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이고,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건국연대를 왜곡하는 방법이 왕의 수를 줄이고 줄여진 왕대의 사실들을 합하여 기록하는 것이었음을 감안하여 추론하자면, 삭감된 5명의 왕 중 하나가 태조대왕과 합산된 국조왕이라는 것이다.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저작권자ⓒ 경남세계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