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칼럼) ‘성평등 정책’ 후퇴시키는 여성가족부 폐지 재고해야

편집국 / 기사승인 : 2022-10-07 16: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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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전,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
정부가 여성가족부 폐지, 국가보훈부 승격, 재외동포청 신설을 내용으로 하는 ‘정부조직개편안’을 확정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6일 오후 2시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정부조직개편안’을 공식 발표했다. 이 장관은 먼저 “여성가족부의 기능을 보건복지부로 이관하고,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설치하겠다”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여성가족부 폐지는 윤석열 정부의 주요 대선공약으로, 여성 불평등 개선에 집중했던 여성정책의 패러다임을 남녀 모두를 위한 양성평등으로 전환해야 할 시기”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발표한 ‘정부조직개편안’에 따르면, 여성가족부는 사라지고 주요 기능은 다른 부처들로 이관된다. 여성가족부의 기능 가운데 청소년·가족, 양성평등, 권익증진 기능을 전 생애주기에 걸친 종합적인 사회정책수행 차원에서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이관하고, 여성고용 기능은 통합적 고용지원 차원에서 고용노동부로 넘어간다. 이는 정부 부처에서 ‘여성’을 지우고 ‘성평등’을 버리겠다는 뜻을 공식화한 것이다.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 여성이 사회의 주류 영역에 참여하여 의사 결정권을 획득하는 형태로 사회 체계가 바뀌는 현상)’ 전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시대적 조류와 세계사적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분열 조장과 퇴행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상민 장관은 여성가족부 기능 축소 우려에 대해 “오히려 사회복지·보건체계와 여성가족 업무가 융합돼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설득력 없는 어불성설에 불과하다. 이런 논리라면, 경제 관련 부처들은 모두 기획재정부 산하로 통합하고, 그 아래 산업통상자원본부나 중소벤처기업본부를 두면 융합의 시너지가 오히려 더 클 것 아닌가 싶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할 경우는 보건복지부나 고용노동부로 이관된 여성가족부 업무는 기존 부처 업무에 비해 당연히 주변화될 수밖에 없고 오히려 겉돌게만 될 뿐이다. 성평등 정책이 ‘독립 부처’가 아닌 보건복지부라는 방대한 조직의 여러 업무 중 하나로 취급되거나 고용노동부의 부수적 업무로 치부되는 경우 정책 추진 동력이 현저하게 약화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무엇보다 컨트롤타워의 부재가 가져올 정부 차원의 성평등 추진체계 위축이 심히 우려스럽다.

왜냐면 장관급 부처 업무를 차관급 본부장이 맡게 되면 국무회의 등에서 성범죄 대응을 비롯한 성평등 정책을 논의할 때 발언권과 교섭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차관급 본부장은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심의·의결기구인 국무회의에 참여해 성평등 정책의 조율·협업을 주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평등 전담 기구로서 갖고 있던 독자적인 법률 제안권과 예산 편성권, 부처 간 정책 조율 기능이 사실상 사라지는 것은 물론 여성정책과 관련해 다른 부처의 협조를 얻는 데도 분명 한계가 노정될 수밖에 없다. 여성가족부와 그 장관의 존재가 없어짐으로써 성평등 정책은 컨트롤타워 부재로 인해 심각하게 후퇴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에 따라 야당과 여성계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유례없는 경제위기 속에 사회통합을 이끌어나가도 모자랄 판에 되레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는 모양새로 ‘여성가족부 폐지’는 이제 국회의 몫이 되었다.

여성가족부는 1988년 정무장관 제2실, 1998년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와 같은 과도기를 거쳐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2001년 1월 처음으로 독립 부처인 여성부(部)로 출범해 2005년 여성가족부로 2008년 다시 여성부로 2010년 또다시 여성가족부로 명칭을 변경해 왔는데 21년 만에 보건복지부와 노동부 등으로 분산 통합되는 운명 앞에 섰다. 예산과 인력, 권한 등의 한계로 여성의 권익 보호라는 “본연의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란 비판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지난 20여 년간 ‘성평등 정책 컨트롤타워’로서 여성의 인권과 지위를 높이는 데 많이 기여해 왔다. 세계 160개 나라가 독립 부처 형태의 성평등 정책 전담 기구를 두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다.

무엇보다도 국제기구의 각종 ‘성 격차’ 통계는 한국의 성평등 추진체계가 오히려 강화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해마다 성별 임금 격차 등을 조사해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10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9월 6일 발표한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른 ‘상장법인과 공공기관 노동자의 성별 임금 격차 조사’ 결과를 보면, 2021년 성별 임금 현황을 공시한 2,364개 상장법인에서 일하는 남성이 평균 9,413만 원을 벌 때 여성은 5,829만 원을 버는 것으로 드러나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가 3,584만 원(38.1%)으로 전년도 35.9%보다 2.2%포인트 더 벌어졌다. 이는 남성 임금이 100만 원일 때 여성은 61만9,000원 밖에 못 받는다는 의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임금 성별 격차 12.8%의 3배 수준이다. 남녀 간 차별은 비단 임금에만 그치지 않는다. 고용률이나 고용 형태에서도 여성은 불리하다. 지난해 여성 고용률은 51.2%로 남성 고용률 70.0%보다 무려 18.8%포인트 낮았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9월 5일 공개한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 보고서에도 여성 일자리의 양과 질이 남성에 비해 미흡하다는 사실이 잘 드러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53.3%로 남성 경제활동참가율 72.6%보다 무려 19.3%포인트나 낮고, 2021년 여성 고용률도 51.2%로 남성 고용률은 70%보다 무려 18.8%포인트 낮게 나타났다.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도 거의 절반 수준인 47.4%로 남성 31.0%에 비해 무려 16.4%포인트나 높다. 저임금 노동자(중위 임금의 3분의 2 미만) 비율도 22.1%로 남성 11.1%의 두 배나 되며, 시간당 임금도 남성 22,637원의 69.8% 수준인 15,804원에 그쳤다. 2021년 여성의 월평균 근로시간은 155.4시간으로 남성 170.4시간보다 15시간이나 적었다. 그만큼 참여의 기회가 적었다는 의미다.

「대한민국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어 남성과 여성 간 성차별은 인정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여성은 남성보다 취업하기 힘들고, 임금도 적게 받으며,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노동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남녀 임금 격차의 주된 요인인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서는 육아휴직의 실질적 보장을 비롯해 모성·부성 보호 제도를 확대·강화하는 등 정책적 노력이 긴요하다. 아울러 임금은 물론 직무, 승진, 고용 형태 등 ‘성별 격차’ 데이터를 공개하도록 하는 ‘성평등 공시제’를 도입 등 여성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아직도 필요하다. 또한 법무연수원의 ‘2021 범죄백서’에서는 2011~2020년 살인·강도·방화·성폭력 등 4대 흉악범죄 피해자는 여성이 남성보다 8배가량 많은 것으로 발표했고, 지난달 서울 지하철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피해자 추모 현장을 찾은 시민들은 “성평등 강화”와 “여성의 생존권”을 호소했다. 여성가족부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포함한 한국의 성평등 정책 방향은 이미 국내를 넘어선 세계적 이슈로 부각하고 있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과 관련한 외신 기자의 질문이 나온 데 이어, 지난 9월 방한한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 미국 부통령은 “민주주의 힘의 진정한 척도는 여성의 힘과 지위의 정도”라고 말하며 “한국과 전 세계의 성평등”을 강조한 바 있다. 여성가족부 업무를 여러 부처에 흩어 놓으면 명맥의 존속은 가능할지 모르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구심점을 잃을 것이란 우려가 매우 크다. 여성 불평등 개선에서 남녀 모두를 위한 양성평등으로 전환하는 패러다임의 변화 시도는 필요하다. 하지만 변화에는 때가 있다. 여성가족부의 영문 이름(Ministry of Gender Equality & Family)처럼 누구도 남·여라는 젠더(Gender)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으로 옮기는 기능만은 꼭 살려놔야만 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 때가 이르다. 따라서 ‘성평등 정책’을 후퇴시키는 여성가족부 폐지는 재고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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