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경영학자/방송인/공익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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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의 골자는 균형감 있는 리더십으로 요약이 된다. 정치인이건 기업인이건 사회지도자이건 항용(ordinary) 다섯 가지의 대립적 결정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실용과 이상, 단기성과와 장기성과, 취약함과 강인함, 특이함과 연대성, 저항과 수용의 문제를 들었다,
우리 사회 전반에 2030세대의 새로운 혁신바람이 시작됐다. 이미 정치권은 판도가 변한 셈이고, 경제, 복지, 문화전반에 머지않아 이 바람은 회오리치게 될 전망이다.
청춘의 힘은 열정과 진실이다, 그러나 청춘의 허점은 아무래도 온전함이다. 그래서 경험의 시간이 보태져야 비로소 더 단단한 리더가 된다,
고대국가 수메르내의 우르크 왕인 길가메시가 남긴 “길가메시 서사”가 생각이 난다. 그 서사에 담긴 ‘카르페 디엠(현재에 충실하라)’이란 어구는 지금도 동서 구분 없이 울림 있는 회자됨(well known)으로 남는다. 길가메시의 길가란 단어의 의미는 늙은이는 젊은이가 될 수 없으며, 젊은이는 늙은이가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현재에 충실하고 담담하게 살아가라는 함의가 담긴 당시 왕의 서사가 기원전 2000년쯤에 어느 돌에 새겨진 내용이다, 이 시기이면 우리 고조선의 연대와 역사의 결이 유사하다.
늙음과 젊음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시간 연결의 시작과 결말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그 역할은 엄연히 성과의 구분을 전하고 있다, 어느 나라나 전투와 승리는 젊은이가 가져오는 전리품이다, 그래서 곧잘 운명이 척박하여 국민들이 위난에 처하면 나라는 젊은 지도자를 내세운다. 고구려 강감찬장군의 전승보나 독립의 기수 유관순열사가 20대의 피 끓는 공헌을 역사에 남겼다.
코로나가 인류의 재앙으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희생을 주고 있다. 사태가 수습이 되어도 마구 할퀴고 일그러진 세상을 다시 원상회복하는 것은 어렵다. 어느 나라나 결국 털고 일어나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 중심에 우리는 젊은 2030세대 한국인들을 돌연 앞장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미 디지털 뉴딜이나 그린뉴딜 등으로 우리나라 미래의 산업 발전방향도 지난해 이 엄중한 코로나 와중에 젊은 국민들의 다양하고 개방적인 가치관으로 전향을 했고, 기업경영에도 요즘 ESG의 혁신바람이 강력하다,
적폐청산이나 사회개혁이나 빈부격차의 이전 과제들이 아직도 주류 정치인들의 통치아젠다로 남은 현실에서 그러나 이미 국민들의 정치정서는 점점 젊은이들로 넘어 가고 있다. 짐작컨대 이건 대세이고 이건 바람이고 이건 역사의 진행방향이다.
2030세대들은 직장과 소득의 새로운 질서로 개방과 공정과 (포용적)경쟁을 들고 나온다. 이른바 “개공경”이다. 그동안 임금개선과 정규직 보장에 집중한 4050세대의 기성 직장인들에겐 참 어려운 시간이 찾아온다. 그러나 2030세대의 결기와 열망에 4050세대가 당당히 대립하기 참 난처한 사안이다. 4050세대의 눈에 지금 하루가 절박한 그 청년들을 보면 자신들이 겪은 과거의 시간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루아침에 한반도 조타수는 2030세대로 넘어가는 중이다. 이미 북한은 20대에 세습통치를 시작하여 30대에 접어든 공산주의 통치자가 하나 자리를 잡고 있다. 당장 남북 리더간의 격한 열정대립으로 넘어갈 문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장차 남북 간에 피 끓는 리더들의 힘의 쟁투가 없으리란 예단도 어렵다. 문제는 누가 점점 젊어지는 지도자들에게 국정과 민생의 갈무리(finishing touches)에서 좀 더 온전한 접근과 진중한 처신을 조언하고 슬기롭게 도울 마땅한 선배지도자의 입지를 갖느냐 이다.
이쯤에서 돌아보면 기성세대들이 너무 기능적이고 효과적인 인생보전에 집중한 조금은 왜소한 자신들의 언어를 바라보게 된다. 임금, 직장, 내 집, 보육, 노후 등이 그런 단어들이다. 그러다 보니 젊은이들에게 진실, 열정, 온전함을 말할 수 있는 사회가치상의 도덕적 명분을 제대로 얻지 못했다. 자신 스스로도 그런 일은 참 어설프다.
기성세대들은 공익으로 사익이 북돋우어진다는 생각은 아직도 낯설고 반신반의한다. 그러나 갈수록 사익은 이제 개별적 획득의 기회가 점멸하는 중이다. 기실(the fact) 지금 각자가 노려보는 주택이나 주식의 투자이득은 결코 사익의 결과가 아니다. 모두가 공개시장의 조작에서 일어나는 법정 투자소득이다. 그 뒤에는 바로 공개시장 조작권한을 가진 금융통화위원회와 중앙은행의 통화관리정책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견 가상코인들이 젊은이의 열망을 채우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만일 각 나라에서 속속 젊은이들이 공개적인 통화정책 권한을 더 가지게 되면 오히려 법정통화 범주를 더 엄격히 관리할 소지가 크다, 코로나에서 공생과 공영의 엄격함을 배운 그들은 결단코 공익에 반하는 사익추구는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맹자는 항산항심으로 청춘에게 도전의 마땅한 기회를 남겼고, 장자는 무위자연이란 말로 장년과 노년에게 인생귀로의 소박한 타당함을 열어 주었다,
서서히 포스트 코로나 일상이 저 만치에서 눈에 보이는 지금, 각자 자기 자리에서 모두가 새로운 좋은 사람(good people)으로 가야할 시간이다.
[세계타임즈 심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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