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설명: 인도 우타프라데시 (Uttar Pradesh)주 아요디아 (Ayodhya)에 들어선 ‘아요디아 람 사원(공식 명칭: Shree Ramjanmbhumi Temple Ayodhya)’. 힌두 문명의 성지로 꼽히는 이 사원은 2024년 1월 24일 역사적인 개관식을 거쳐 신도들에게 공개됐으며, 대규모 건축 공정을 마무리한 최종 완공은 2025년 11월 25일이다. 사진은 개관 직후인 2024년 2월초 현장을 방문했을 당시의 모습으로, 수천 년 인도 문명의 정신적 원형과 현대 인도의 국가적 상징성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람 사원은 종교를 넘어 인도 사회의 역사·문화·정체성이 응축된 상징적 장소다.
한국의 람 사원 건립은 아시아 외교의 새 항로가 될 수 있다. 21세기는 흔히 ‘아시아의 시대’, 혹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시대’라 불린다. 그러나 진정한 아시아의 부상은 경제 규모나 군사력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 문명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미래의 협력 질서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제기된 ‘한국 내 람(Ram) 사원 건립’ 구상은 단순한 문화 제안을 넘어, 아시아 외교 지형을 새롭게 그릴 수 있는 전략적 의미를 지닌다.
한국에 람 사원을 세운다는 것은 한·인도 양자 관계를 넘어, 한·캄보디아, 더 나아가 한·ASEAN 협력 전반을 관통하는 현대판 해양 실크로드의 재구현을 의미한다. 과거 향신료와 비단이 오가던 바닷길이 오늘날에는 가치와 신뢰, 문화와 연대의 통로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이는 경제 중심의 협력을 넘어, 정서와 문명 차원의 외교 자산을 확보하는 일이며, 한국이 아시아 연대의 중심축으로 도약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특히 한국과 캄보디아의 관계는 이 구상의 외교적 함의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두 나라는 서로를 ‘형제국가’라 부르며, 캄보디아에서는 한국을 ‘사위의 나라’로 인식할 만큼 인간적 유대가 깊다. 한국에는 50,000명 이상의 캄보디아 출신 이주 노동자가 건설, 농업, 중소 제조업 분야 등에서 일하고 있다. 또한 수만 명의 캄보디아 출신 결혼 이주민과 다문화 가정이 이미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일부가 된 현실은, 한·캄보디아 관계가 외교 문서 속 협력을 넘어 생활 속 동맹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람 사원은 한국이 ASEAN을 대하는 방식이 단기적 이해관계가 아닌, 장기적 문명 연대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사진설명 : 캄보디아 프놈펜에 위치한 뚜얼슬랭 대학살 박물관(Tuol Sleng Genocide Museum)의 입구 모습. ‘킬링필드’로 대표되는 캄보디아 근현대사의 아픔을 상징하는 이곳은, 과거 크메르루주 정권 시절 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참혹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박물관 입구를 바라보는 순간, 역사의 무게와 인류가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비극의 교훈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방문객들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평화와 화해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갖게 된다.
또한 한국과 캄보디아가 공유하는 또 하나의 깊은 접점은, 바로 ‘상처 이후의 재건’이라는 역사적 경험이다. 한국은 6·25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 이후, 폐허 속에서 다시 일어섰고, 마침내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압축 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드문 국가로 평가받는다. 캄보디아 역시 킬링필드라는 인류사적 비극을 겪은 나라다. 그러나 오늘의 캄보디아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다. 올바른 국가 정책과 국제사회와의 연대, 그리고 무엇보다 역동적인 젊은 세대의 참여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이 전쟁의 상흔을 딛고 성공의 서사를 써 내려갔듯, 캄보디아 또한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되 그것에 매이지 않고, 또 하나의 ‘성공의 역사’를 써 내려갈 잠재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한국에 세워질 람 사원은 바로 이 가능성에 대한 연대의 메시지이자, 상처를 극복한 국가가 상처를 안고 있는 이웃에게 건네는 가장 깊은 공감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이 외교적 비전은 결코 공중에 떠 있는 구상이 아니다. 서기 1세기, 아시아의 바다는 이미 하나의 문명권으로 흐르고 있었다. 인도·동남아·한반도는 바닷길이라는 거대한 혈맥으로 서로의 삶과 정신을 연결했다. 그 길 위에 있었던 인물들이 바로 인도 아요디아 공주 수리라트나(Suriratna)로 알려진 허황옥(許黃玉) 왕후와, 오늘날 캄보디아 왕국의 시초가 되었던 푸난(Funan) 왕국의 기틀을 닦은 나기 소마(Nagi Soma) 여왕이다.
이들은 신화적 존재가 아니라, 고대 해양 실크로드가 실재했음을 증언하는 문명사의 상징이다. 인도의 ‘람(Ram)’ 서사는 이 바닷길을 따라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 캄보디아와 태국으로 확장되었고, 그 흔적은 앙코르와트 (Angkor Wat)의 벽화와 가야의 건국 신화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한국에 람 사원을 세운다는 것은 바로 이 잊혀진 문명 네트워크를 오늘날의 언어로 복원하는 일이다.
민간외교관으로 활발히 활동해 온 세계적 평화 활동가이자 문화 기획자인 제나 정(Dr. Zena Chung) 글로벌외교관포럼 및 한-인도 비즈니스문화진흥원(IKBCC) 이사장이 제안한 ‘람 사원’ 구상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특정 종교나 국가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인류애와 평화, 문명 간 대화를 위한 글로벌 평화센터를 한국에 세우자는 제안이다. 다시 말해, 한국이 아시아 문명의 교차점이자 조정자로 나설 수 있는 상징적 거점을 만들자는 것이다.

▲사진설명 : 제나 정 (Dr, Zena Chung) 이사장이 한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캄보디아 킬링필드 현장을 방문해, 아픈 역사의 흔적을 마주하고 있다. 과거의 고통을 단순한 기억에 머물게 하지 않고, 위로와 사랑으로 승화하고자 제나 정 이사장은 한국을 상징하는 ‘사랑의 하트’로 의미 있는 답례를 전했다. 참혹한 역사 속에서도 인류애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순간을 담은 장면이다.
이 과정에서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의 선택도 시험대에 오른다. 람 사원은 이주민을 단순한 노동력이 아닌, 역사와 문명을 공유하는 이웃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가장 성숙한 문화적 포용의 선언이 될 수 있다. 허황옥이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탑이 가야에 뿌리내렸듯, 람 사원은 오늘의 한국 사회에 공존과 존엄이라는 가치를 심는 공간이 될 것이다.
그 위에서 비로소 이 서사의 깊은 층위가 드러난다. 허황옥과 소마 여왕이라는 여성 지도자의 존재는, 아시아 문명이 본래부터 여성적 지혜와 리더십을 통해 연결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 인도에서 말하는 ‘나리 샥티(Nari Shakti)’, 서구에서 말하는 ‘우먼 파워(Women Power)’와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람 사원은 고대의 여성 서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아시아적 가치에 기반한 여성 리더십 강화의 상징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다. 이 경험은 아시아 국가들에게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상처를 극복한 국가만이 제시할 수 있는 치유의 서사다. 한국에 세워질 람 사원은 바로 그 서사를 공간화한 상징이자,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을 넘어 정신적·도덕적 리더십을 갖춘 세계적인 문화 강국으로 도약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이제 정부와 지자체가 응답할 차례다. 허황옥의 발자취가 남은 가야의 땅이든, 현대적 교류의 중심지든, 한국판 ‘람 사원’ 건립을 국가적 문화 외교 프로젝트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2,000년 전 바닷길을 열었던 아시아의 기억을, 21세기 인류의 희망으로 바꾸는 일. 지금이 바로 그 결실을 맺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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