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우 칼럼> 고조선과 진국(辰國; 삼한), 동·북부여, 고구려의 상관관계에 의한 만주의 영토권(제13회)

조원익 기자 / 기사승인 : 2020-01-29 10: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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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고구려 건국연대를 기원전 217년이라고 비정(比定)하면 고구려는 어떤 민족에 의해서 구성되었고 한사군 설치 당시의 영역이 어디까지였는지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구성 민족과 영역에 의해서 한사군을 구성하고 있는 한족으로부터 만주의 문화가 영향을 받았는지 아닌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한사군 설치 당시 고구려의 영역이 고조선 중에서 만주에서는 마지막으로 멸망한 불조선의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었다면, 우리선조들인 한민족이 만주에서 고유한 영토문화를 계승하였다는 것을 근거로 문화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고구려 이전에 졸본부여가 되었든 구려국이 되었든 고구려를 선행하는 국가가 있었기에 고구려가 초기부터 튼튼한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러한 점을 전제로 고구려의 구성 민족을 살펴본다면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의 강인숙은 「고대조선의 족명」이라는 논문에서 고구려의 구성민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삼국지'「예전」의 기록에 ‘예’의 노인들은 스스로 자신들은 ‘구려’와 같은 민족이라고 했다. 「예전」의 기록은 ‘예’사람 당사자들이 직접 말한 것이라고 함으로 믿어 의심할 바가 없다. 그리고 진수는 '후한서'「고구려전」 에서 ‘구려(고구려)는 일명 맥’이라고 명백히 밝혔다.

 

 또한 당나라 사학자 배인은 '사기'「흉노열전」에 ‘맥은 곧 예이다’라고 주석하였으니 이것은 ‘예’와 ‘맥’은 구별할 수 없다는 '삼국지'「예전」의 기록과 통하는 것이다. '삼국지' 「위서」 「예전」에 의하면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고주몽이 졸본부여 지역에서 고구려를 세웠음으로 고구려와 부여 사람들은 같은 주민들이었다. 고조선이 멸망한 후 그 주민의 일부가 ‘예’지역에서 살았다. 그런데 그 후손들은 옛날부터 스스로 자신들은 고구려 사람들과 같은 족임을 말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결국 고구려의 구성 민족은 고조선의 구성 민족과 동일한 고조선의 후손들이라는 것이다.


 고구려의 구성 민족이 고조선의 후손들이라는 것을 증명했으면, 한나라 침공 당시 고조선의 후손들인 고구려의 영역은 어디까지였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한다.


 한 무제가 고조선을 침입하여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설치한 시기는 고구려가 건국한지 109년이 되는 기원전 108년이니 이 시기는 고구려 초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역에 대해서는 '간도학보' 제2권 제1호에 발표된 신용우의 논문 「고구려 건국연대의 재정립에 관한 연구」에 잘 서술되어 있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가시라’는 ‘삼림국(森林國)’을 뜻하는 것으로 이두문자로 ‘갈사국’이라고 쓰며 이것은 만주어로 ‘와지’이고 ‘옥저’는 와지의 음역이므로 옥저와 갈사국은 같은 나라를 지칭하는 것이며, 해부루가 북가시라로 옮겨와서 동부여가 되었으므로 옥저와 갈사국과 동부여는 같은 나라라고 했다.

 

 '삼국사기'를 저술한 김부식이 훗날 신채호에 의해서 정리된 동부여에 대한 것을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중국사서에 의존해서 서술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고구려의 초기 영토 확장과정은 '삼국사기'에도 잘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추모왕6년 오이와 부분노에게 명하여 태백산 동남쪽의 행인국(荇人國)을 정벌하게 하고, 10년 부위염에게 명하여 북옥저를 정벌하게 하였다. 유리왕11년에는 부분노의 계략으로 선비를 복속하고, 33년 오이와 마리에게 명하여 서쪽으로 양맥을 정벌하여 그 나라를 멸망시킨 후 한나라의 고구려현을 빼앗았다. 대무신왕5년 부여왕 대소를 죽이는 바람에 대소의 아우가 갈사수에 나라를 세우게 하였으며 부여왕의 사촌동생이 만여 명을 데리고 투항해 왔다. 9년 개마국을 정벌하고 구다국의 항복을 받아 내었다. 15년 최리의 낙랑국을 정벌하였다. 태조대왕 4년 동옥저 정벌하고 16년 갈사왕이 행복해 왔으며, 22년 주나를 정벌하였다.’고 한다.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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