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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만주국영토의 올바른 귀속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지리적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을사늑약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기 직전으로 몰아넣고 제일 먼저 실행한 일은 대한제국의 역사를 연구하여 자신들이 지배하기 쉽도록 왜곡하는 일이었다.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1906년 이마니시 류(今西龍: 금서룡)를 불러들여 본격적인 역사왜곡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대한제국의 영토가 고조선 이래의 만주와 한반도에서 대마도까지 이어지는 영토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한제국을 온전하게 지배한다는 것은 한반도는 물론 만주까지 지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일본은 청나라는 만주족, 즉 여진족이 세운 나라로 여진족의 뿌리가 대한제국과 같은 민족임으로 당연히 청나라는 중국이 아니라 중국을 지배하는 민족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일본은 절대 만주를 포기 할 수 없었고 만주국을 반드시 건국하려 했던 것이다.
물론 이미 1910년에 조선을 병탄한 일본의 입장에서 대륙진출이라는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만주를 통하는 것이 수월하다는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기는 하다. 아울러 만주까지 대한제국의 영토라고 해서 한꺼번에 점령하기에는 나름대로 애로사항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만주철도 부설권을 얻기 위해서 이미 1909년에 간도협약을 통해서 만주의 일부를 스스로 청나라에게 내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훗날 청나라의 후손들을 이용해 만주국을 세워서 지배하기 위해, 만주가 청나라 영토라는 것을 국제적으로 공인해 주는 방편으로 활용한 것일 수도 있다. 일본은 청나라의 발상지가 만주라는 것을 알기에, 청나라가 한족들에게 밀려나면 자신들의 발상지인 만주로 돌아올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만주국을 건국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대한제국과 만주국의 통치를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이미 제6회에서도 서술한 바와 같이 만주국을 별도로 건국하지 않을 경우 이미 만주에 터전을 일구고 있는 대한제국의 백성들과 만주에 살고 있는 만주족은 물론 한반도에 살고 있는 대한제국의 백성들까지 연합하여 일본에 저항한다면 감당하기 힘든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만주국을 건국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청나라와 조선의 갈등을 표출시켜 이미 만주에서 생활하고 있는 조선족과 만주족의 민심을 양분하여, 분열을 초래하기에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게다가 비록 청나라가 패망하여 마지막 황제 푸이가 천진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청나라의 발상지인 만주에 청나라 황제를 국왕으로 추대하여 국가를 세운다면 국제사회로부터도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계산했다.
일본은 만주를 차지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만주국 건립을 끈질기게 추진했고 그 결과 만주국을 건국하였는데 그 영역이 대한제국의 선조들인 고조선이 지배했던 영역과 비슷하다. 그러한 만주국의 지리적인 특징은 아래 지도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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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3-1>만주국의 영역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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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3-2>고조선과 진국의 영역도 |
[그림 3-1]만주국의 영역도와 [그림 3-2]고조선과 진국의 영역도
[그림 3-1]과 [그림 3-2]에서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듯이 한반도를 제외한 영역에서는 고조선의 영역과 만주국의 영역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의 의도대로 고조선 이래 대한제국의 고토였던 만주는 일본의 괴뢰국가인 만주국으로 탄생한 것이다. 만주국은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대한제국의 선조들이 대대로 지켜온 영토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다만 고조선의 영역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고조선은 연해주의 약 절반을 점유하고 있는데 반해 만주국에는 연해주가 일절 포함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1860년 북경조약에 의해서 조선의 의사와는 상관도 없이 청나라가 일방적으로 연해주를 러시아에게 넘겨줌으로써 그 당시에 연해주는 이미 소련이 권리를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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